사진 : 애플
WDDC17에서 맛보기로 깜짝 공개된 아이맥 프로. 27인치 아이맥의 형상에 단지 스페이스 그레이를 입혔을 뿐인 이 녀석이 보일듯말듯한 실루엣으로 키노트에 등장하는 순간 가슴은 왜 그리 두근거리던지. 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었을 거라 믿습니다.
아이맥 프로를 설명하는 많은 요소 중 제 가슴을 뛰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유니크한 부분이긴 하지만 썬더볼트 3.0 포트가 4개 제공된다는 사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보단 좀 더 원초적인 자극이었죠. 5000달러에서 단 1달러가 빠진 가격? (어떤 의미로든) 놀랍긴 했지만 키노트 말미에 공개된데다 제 가슴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뛰고 있었는걸요. 사실 제가 아이맥 프로에 매료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직감한 건 바로 아래의 슬라이드가 뜬 순간이었습니다.
사진 : 애플
최대 18코어 프로세서, 최대 128GB 메모리, 최대 16GB의 그래픽메모리를 탑재한 라데온 프로 베가 그래픽카드. 이 모두를 하나로 담아 애플이 지금까지 발표했던 모든 컴퓨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성능으로 거듭난 아이맥 프로의 가격은 단돈 4999달러부터. 그러나 눈치 빠른 여러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키노트에서 발표된 사양이 곧 4999달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름지기 사양은 '최대-', 가격은 '-부터' 로 표기하는 이 바닥의 생리.
그렇다면 과연 4999달러어치 아이맥 프로는 어떤 사양을 갖는 것일까요? 이 궁금증은 WDDC17 기조연설이 끝나자마자 풀렸습니다. 애플이 실시간으로 공식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며 신설한 아이맥 프로 제품 소개 페이지에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옵션들을 열거해 두었거든요.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건대 이들 가운데 최소사양으로만 구성한 가격이 4999달러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문. 과연 키노트에서 발표된 사양으로 아이맥 프로를 구성하면 가격은 얼마나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처럼 정답이 존재하는 레퍼런스를 찾을수만은 없고 다소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다행히 좋은 선례로 삼을 만한 제품이 있네요. 바로 애플의 전문가용 컴퓨터 맥 프로입니다.
애플은 2013년 연말 맥 프로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했는데(시판은 2014년 초부터), 이떄의 변경은 그때까지의 모든 변화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격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네할렘 아키텍처 기반의 32nm 프로세서 '걸프타운'을 탑재하던 풀사이즈 타워형 컴퓨터를, 샌디브릿지 아키텍처 기반의 22nm 프로세서 '아이비브릿지-EP'로 사양은 높이면서도 폼팩터는 도합 8리터가 될까말까한 컴팩트한 부피로 짜부라트렸기 때문입니다. 아니, 단순히 부피가 작아진 것만으로 변화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컴퓨터의 외형 자체가 유서깊은 직육면체를 탈피해 원기둥으로 바뀌었단 것이겠죠.
출시 당시 맥 프로는 기본형이 2999달러와 3999달러 두 가지 티어로 제공되었고 (이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각각 4코어 프로세서 + 12GB 메모리 + 듀얼 파이어프로 D300 그래픽카드의 사양과 6코어 프로세서(+500달러) + 16GB 메모리(+100달러) + 듀얼 파이어프로 D500 그래픽카드(+400달러)의 사양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나 2017년 초 애플은 이 두 기본형의 스펙을 일제히 상향 조정했는데, 그 결과 출시 당시 3999달러 티어에 해당하던 사양이 2999달러로 내려오게 되어 약 1000달러의 가격인하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3999달러 티어는 8코어 프로세서와 듀얼 파이어프로 D700 그래픽카드를 탑재합니다) 그러나 최초 출시로부터 3년이 넘어가는 동안,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최고 사양의 상한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습니다.
이쯤에서, 맥 프로의 커스터마이징 옵션별 가격과 당대 현존했던 실제 부품가격 사이의 차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맥 프로의 옵션 가격이 실제 부품가격 차를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면 이를 그대로 오늘날의 아이맥 프로에 적용, 손쉽게 대입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실제 부품가격 차가 맥 프로의 옵션 가격으로 어떤 비율로 환산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다시 오늘날의 아이맥 프로에 비례적용해볼 수 있겠죠.
1. 프로세서 : 거의 정확한 가격 차 반영
맥 프로는 최초 4코어 프로세서를 베이스로 출시되었으나 출시 3년차를 맞아 베이스 모델을 6코어로 업데이트했습니다. 바뀐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출시 당시 6코어와 8코어, 6코어와 12코어 모델 사이의 가격 차는 각각 1500달러, 3000달러에 달했지만 업데이트 이후에는 각각 800달러, 2000달러로 인하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구할 수 있는 맥 프로는 최하위 모델의 프로세서를 최고 사양으로 바꾸는 데 20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온 E5-1650 V2와 E5-2697 V2의 가격 차이와 거의 같습니다.
<둘의 가격 차는 정확히 2031달러>
따라서 아이맥 프로 역시 프로세서 모델간의 가격 차를 거의 그대로 옵션 가격에 적용했으리라 가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시 초기의 맥 프로는 약 1.5배의 프리미엄을 적용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1-1.5의 범위 내에서 프리미엄 배율을 골라잡으면 되겠죠) 우선 아이맥 프로에 사용된 스카이레이크-X/SP 프로세서의 경우 8, 10, 18코어의 컨슈머 프로세서 가격이 공개된 상태입니다. 이들은 각각 599달러, 999달러, 1999달러로 적절한 간격을 가집니다.
사진 : 인텔
애플은 공식적으로 아이맥 프로에 "제온" 프로세서가 탑재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모델을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인텔은 스카이레이크-SP를 탑재한 제온 라인업을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 라인업으로 명명하며 (SP가 그 약자입니다) 플랫폼을 LGA3647 소켓으로 바꾸었는데, 여기에는 기존의 제온 라인업 및 쌍둥이 격인 스카이레이크-X (LGA2066) 기반 컨슈머 프로세서들과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메모리 채널 구성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기존 제온 / 스카이레이크-X는 쿼드채널 메모리를 지원하지만 LGA3647 기반 스카이레이크-SP는 최대 6채널 메모리를 지원합니다. 게다가 프로세서 자체의 크기도 훨씬 커졌습니다.
사진 : 애플
애플이 공개한 아이맥 프로의 내부 이미지를 함께 두고 보면 아이맥 프로는 컨슈머용과 같은 LGA2066 스카이레이크-X를 사용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DIMM 슬롯과 CPU 소켓 긴 변 길이의 비율로 추정) 메모리 역시 4개의 DIMM 슬롯이 제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요. 한편 인텔은 역사적으로 당대의 컨슈머용 카운터파트와 유사한 구성을 제온 라인업에도 두어 온 바 있는데 이들의 가격은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즉 아이맥 프로에 탑재되는 프로세서가 코어 X 시리즈를 이름만 바꾼 것이든, 실제로 LGA2066 기반의 제온이 존재하든 이미 공개된 코어 X 시리즈의 가격 정보를 대입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는 소결론입니다. 따라서, 아이맥 프로는 최하위 모델(8코어)에서 10코어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400달러, 18코어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1400달러가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2. 메모리 및 스토리지 : 용량에 정비례하는 선형적 가격
<이미지 출처 : Jonathan Morrison 유튜브>
맥 프로의 메모리 단위가격은 3년 전과 지금 모두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 값은 GB당 25달러입니다. 리뉴얼 이후 맥 프로 기본형은 16GB의 메모리를 탑재했으며 이를 32GB 또는 64GB로 업그레이드 가능한데, 아이맥 프로는 정확히 두 배씩 증량되어 기본형이 32GB를 탑재하고 이를 64GB 또는 128GB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러프하게 추측해 각 티어별로 동일한 가격이 그대로 평행이동해 왔다고 가정하면 (=단위가격은 절반으로 낮아짐), 아이맥 프로는 최하위 모델(32GB)에서 64GB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400달러, 128GB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1200달러가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 맥 프로는 PCIe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256GB SSD를 기본형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512GB / 1TB로 업그레이드 가능하고 이들 옵션의 가격은 각각 출시 시점 기준으로 300달러 / 800달러, 올해 초의 가격인하 이후 200달러 / 600달러가 되었습니다. 단위가격은 256GB당 200달러(=TB당 800달러)로 선형적입니다.
<이미지 출처 : iFixit>
아이맥 프로는 1TB PCIe SSD를 기본 제공하며 커스터마이징 옵션은 2TB 및 4TB입니다. 앞서 구한 단위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면 2TB 업그레이드 옵션이 800달러, 4TB 업그레이드 옵션이 2400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지만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탑재가 유력한 삼성 960 PRO SSD의 가격입니다. 해당 제품의 1TB 모델은 현재 599달러에 시판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맥 프로는 최하위 모델(1TB PCIe SSD)에서 2TB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600-800달러, 4TB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1800-2400달러가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만 아직 출시시기가 더 남은 만큼, 메모리처럼 단위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춰 TB당 400달러 이하로 제공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3. 그래픽카드 : 라데온으로 볼 것이냐 파이어프로로 볼 것이냐
맥 프로가 사실상 가격 인하된 올해 초 이후, 기본형에 탑재되는 그래픽카드는 (듀얼) 파이어프로 D300에서 D500으로 상향된 바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듀얼) 파이어프로 D700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고 해당 옵션의 가격은 200달러. 즉 1장의 파이어프로 D500 그래픽카드와 D700의 가격 차는 100달러로 환산됩니다. 이들은 각각 컨슈머용 라데온 HD 7950과 7970의 상동 모델로, 마침 이들의 출시가격 차도 정확히 100달러입니다. (449달러 vs 549달러)
그러나 맥 프로의 가격이 인하되기 전, 그러니까 최초 출시 시점을 기준삼으면 다소 다른 분석도 가능합니다. 이때 (듀얼) 파이어프로 D500에서 D700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600달러로 당시 두 그래픽카드의 가격 차이는 300달러로 산정되었던 셈입니다. 이는 '애플에게만' 헌정되는 AMD의 그래픽카드를 라데온으로 볼 것인지, 이들의 전문가용 그래픽카드 라인업의 일부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단 바텀 라인은 맥 프로용 파이어프로가 실제 파이어프로의 절반에 해당하는 그래픽메모리를 탑재하고 있고, 작동속도 등도 하향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실제 파이어프로와의 성능/가격비교를 통해 맥 프로에 탑재된 파이어프로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용자의 작업환경이 그래픽카드의 어느 요소를 활용하는지에 따라 세부적으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대체로 맥 프로는 같은 칩셋을 사용한 상용 파이어프로보다 메모리 용량이 적게 변형되어 있고 약 70-90%에 해당하는 성능을 제공합니다(연산성능 기준). 파이어프로 D300의 대응 모델인 파이어프로 W7000의 가격은 899달러, D500의 대응 모델인 W8000은 1599달러, D700의 대응 모델인 W9000은 자그마치 3999달러에 달합니다. 반면 맥 프로의 그래픽카드 커스터마이징 옵션은 (D500에서 D700으로 기준) 가장 비쌀 때조차 600달러에 그쳤습니다. 가격 책정의 기준이 상용 파이어프로가 아닌 것이죠.
후술하겠지만, 바로 이 점으로부터 맥 프로가 상당히 좋은 가성비를 가진다고 볼 여지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라데온과 파이어프로라는 두 그래픽카드는 하나의 칩셋으로부터 파생되고 이들의 성능을 차별화하는 것은 전용 드라이버와 소프트웨어에 있습니다. 애플은 맥 프로에 파이어프로 상용 모델보다는 다소 하향된 세미커스텀 칩셋을 탑재했고, 이들의 가격은 동급의 라데온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드라이버 및 소프트웨어 지원을 통해 구현되는 최종 성능은 분명 라데온보다 파이어프로에 더 가깝습니다. 결국 사용자의 효용을 생각하면 맥 프로는 '전문가용 그래픽카드를 제공하는' 놀라울 만큼 저렴한 구성인 것도 맞습니다.
현재 라데온 프로 베가의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직전의 플래그십 칩셋 피지의 전례를 준용해볼 수 있습니다. 피지 기반의 라데온 R9 FURY X는 64개의 컴퓨트 유닛을 탑재했으며 649달러로 출시되었습니다. 반면 컴퓨트 유닛을 56개로 줄인 라데온 R9 FURY는 499-549달러로 출시되어 둘의 가격 차는 100-150달러 가량입니다. 이들은 컨슈머용 그래픽카드이지만 앞서 맥 프로에 탑재된 (세미커스텀) 파이어프로 역시 상용 파이어프로보다는 라데온과 유사한 가격 특성을 보인 바 있습니다.
아이맥 프로에 탑재될 라데온 프로 베가 역시 56 컴퓨트 유닛을 탑재한 모델과 64 컴퓨트 유닛 모델로 구분되어 있으며, 게이밍 성능에 관해 다소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최상위 모델이 최종적으로는 지포스 GTX 1080-1080 Ti 사이의 게이밍 성능과 그들보다 뛰어난 연산성능을 갖추고 1080 Ti와 비슷한 가격대를 겨냥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1080 Ti의 가격 역시 649달러. 눈치채셨겠지만 이것은 980-980 Ti 사이의 게이밍 성능과 그들보다 뛰어난 연산성능을 갖추고 980 Ti와 같은 649달러에 출시된, FURY X의 포지션을 정확히 승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가의 하위 모델 역시 FURY와 같은 가격대에 포지셔닝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겠죠.
따라서, 아이맥 프로는 최하위 모델(라데온 프로 베가 56)에서 라데온 프로 베가 64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옵션이 100-150달러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만 '준 전문가용 그래픽카드' 로써 라데온 프로 베가의 가격이 데스크탑용 RX 베가에 비해 어느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을지가 변수인데, 이 부분은 추측이 무의미하니 논외로 두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옵션을 더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상기시키자면 아이맥 프로의 최저 가격은 4999달러. 이 구성은 8코어 프로세서와 32GB 메모리, 8GB HBM2를 탑재한 라데온 프로 베가 56, 1TB PCIe SSD를 포함합니다. 프로세서를 18코어로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14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메모리를 128GB로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12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그래픽카드를 16GB HBM2를 탑재한 라데온 프로 베가 64로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1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SSD를 4TB로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18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결국 4999달러에서 시작한 아이맥 프로는 최대 9499달러에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앞서 맥 프로의 출시 당시 최고가 구성이 9500달러인 것과 유사합니다. 라인업 구성이 일견 중구난방으로 보이지만 실은 애플이 전략적으로 '3-4K부터 10K 달러까지'의 가격대를 자사의 컴퓨터가 노리게끔 설정해둔 게 아닌가 싶군요. 사실 이 가격대에서 윈도우 워크스테이션의 대표주자격인 얼굴이 그닥 없기도 하죠.
업사이드 다운 : 역산해 본 맥의 고유 가치
지금까지의 접근법을 활용해 컴포넌트를 제외한 맥 프로만의 고유 가치를 계산해 봅시다. 2999달러 기본형은 6코어 프로세서, 16GB 메모리, 듀얼 파이어프로 D500 그래픽카드와 256GB PCIe SSD를 제공하는데 이들을 모두 뺀 가격은 약 900달러. 그러니까 100만원 정도의 가격 안에 메인보드 등 기타 부속과 케이스 제조단가, 맥 프로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값어치와 수많은 번들 소프트웨어가 포함되는 것이죠. 윈도우 기반의 기업용 완제품 컴퓨터도 대체로 그 정도의 프리미엄은 붙는 것을 생각하면 맥 프로는 대중의 상상보다는 훨씬 담백한 가격을 가진 셈입니다.
게다가 위의 단가는 그래픽카드를 컨슈머용으로 가정한 것으로, 실제 애플은 맥 프로에 전문가용 드라이버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함으로써 AMD의 전문가용 그래픽카드인 파이어프로 대비 70-80%의 성능을 제공합니다. 이는 가격으로 환산하면 장당 최소 1200달러, 최대 3000달러에 육박합니다. 즉 소매 시장에서 똑같은 CPU, 메모리, 스토리지를 구입하고 '가장 비슷한' 상용 파이어프로 그래픽카드를 사는 식으로는 어떻게 하든 맥 프로의 가격을 초과하게 됩니다.
아이맥 프로로 넘어오면 이런 '애플의 경제성'은 한층 도드라집니다. 비록 시작하는 가격이 4999달러로 맥 프로 기본형의 2999달러, 3999달러보다 훨씬 비싸기는 하지만 27인치 5K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결정적 차이가 있거든요.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해상도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는 지구상에 DELL의 한 가지 기종밖에 없었던데다 가격은 2000달러를 훌쩍 넘었습니다. 올해 초 LG에서 울트라파인 5K 모니터를 출시해 많이 저렴해진 결과가 1300달러. 아이맥 프로는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구성의 맥 프로에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5K 모니터를 합친 것보다도 300달러가 저렴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능은 훨씬 좋습니다.
사진 : 애플
가격을 산정하며 살펴보았듯 결국 킬링 파트는 하드웨어 그 자체가 아닌, 이를 써먹을 수 있게 하는 드라이버와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그래픽카드의 가치가 그렇죠. 관점에 따라 맥 프로는 10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을 얹은 단순히 비싼 컴퓨터일 수도, (하지만 디자인과 번들 소프트웨어를 생각하면 100만원이 오히려 모자라다고 봅니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전문가용 그래픽카드의 모든 기능을 언락해 컨슈머용 그래픽카드 가격에 파는 대단히 경제적인 워크스테이션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며 저는 어느 때보다 맥 프로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네? 아이맥 프로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하드웨어에 열광하는 사용자들은 멋지고 고급스러운 케이스 하나를 구입하는 데에 수십만원을 아낌없이 지출하는 이들입니다. 저 역시 과거 어느 때 리안리의 90만원짜리 알루미늄 케이스를 충동구매한 후 한동안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후 몇달간은 통장 잔고를 보며 조금 다른 의미로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습니다)
맥 프로는 지구상의 어떤 컴퓨터 제조업체도 시도한 적 없는 디자인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한 작품이고, 출시된 지 3년 반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그에 필적하는 파격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애플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쓸모없다 여기더라도 맥 프로의 껍데기가 가진 디자인과 마감, 재질, 이 모든 것이 단돈 100만원이라면 무척 합리적인 것 아닌가, 생각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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