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AMD에게 뜻깊은 해입니다. 정확히 ATI 인수 10년차를 맞게 되기 때문이죠. 이때를 돌이켜보면, 양사가 통합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AMD는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반도체 제조설비를 내다 팔아야 했고, 그 결과 한때 인텔처럼 -그리고 인텔과 함께 유이(二)한- 풀 스택 제조사였던 AMD는 팹리스로의 일생일대 전환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떨어져 나온 AMD의 제조부문이 오늘날의 글로벌파운드리입니다. AMD-ATI-글로벌파운드리 셋의 삼각관계는 이토록 복잡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AMD에 인수될 당시 ATI는 경황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연이은 빅 칩의 흥행 실패로 수익률이 나빠졌기 때문인데요. 이에 ATI의 경영권을 획득한 AMD가 가장 중점적으로 착수한 것이 그간 빅 칩에 가려져 있던 '중면적-중가격대의 메인스트림 칩', 이윤이 가장 많이 남아 흔히 '스위트 스팟'이라 불리는 것의 재건이었습니다. 플래그십 자존심 대결을 잠시 미루고 보급형 시장에서 수익률을 높여 경영 정상화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었죠. 당장 라데온 HD 2900 후속 빅 칩 개발이 중단되었고 대신 HD 2900의 다이 축소 버전인 HD 3800 시리즈가 저렴한 가격에 투입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의 정점을 찍은 라데온 HD 4800 시리즈는, 비록 플래그십 대결에서는 경쟁사에 왕관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경쟁사가 빅 칩만으로 공략하기 힘든 스위트 스팟을 제대로 찌른 표본과도 같았습니다. 당시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280/260에 쓰이던 GT200 칩셋의 면적은 576mm2, 라데온 HD 4800 시리즈에 탑재된 RV770의 면적은 256mm2로 단순히 보더라도 칩 생산단가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이후 8년을 겪어오며 AMD는 시나브로 과거의 빅 칩 전략에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2011년의 타히티(352mm2), 2013년의 하와이(438mm2), 2015년의 피지(596mm2)에 이르기까지 최상위 칩의 크기는 거침없이 늘어 왔으며 심지어 피지는 당대의 라이벌 칩이던 GM200보다 11%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탑재하기까지 했죠. 폴라리스는 이러한 '궤도 이탈'을 다시 다잡고 경영 정상화를 꾀하던 10년 전의 초심을 닮은 아키텍처입니다. 이 즈음 AMD는 각 사업부문별로 해체, 재배치했던 구 ATI 조직과 인력을 단일한 하나의 사내 조직으로 재창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라데온 테크놀러지 그룹(RTG), 그 수장으로는 현 AMD의 수석부사장이자 오랜 ATI 맨이었던 라자 쿠드리가 발탁되었습니다. ATI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AMD, 십년이 지난 지금은 거꾸로 AMD의 그래픽 부문을 정상화하기 위해 ATI 정예 멤버들이 뭉친 재미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엔비디아가 오랜 파트너 TSMC의 16nm 핀펫 공정을 채택한 것과 달리, AMD는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파운드리에 GPU 생산을 위탁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앞서 ATI를 인수하기 위해 AMD가 자사의 제조설비를 매각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글로벌파운드리라는 점을 지적했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AMD의 -심지어 구 ATI 출신이 주축이 된 팀에서 개발한- GPU를 생산하기 위해 다시 글로벌파운드리에 손을 벌리게 되었다니 참 묘한 인연들입니다.
꼭 8년 전 이맘때(정확히는 6월 25일) 라데온 HD 4850을 출시하며 시장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데 성공한 AMD. 이번에는 과연 어떤 재기 넘치는 제품을 들고 찾아왔을까요. 라데온 RX 480을 만나봅시다.
1. 이론적 배경
각설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폴라리스'를 잠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GCN이라는 이름은 2011년 연말, 서던 아일랜드(라데온 HD 7000 시리즈)라는 코드네임으로 처음 소개되었으며 핵심은 '벡터를 묶은 스칼라' 방식의 VLIW4 아키텍처를 '스칼라를 묶은 벡터'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었습니다. 과거 VLIW4/5 시절에는 명목상의 스트림프로세서 갯수 대비 1/4~1/5에 불과한 실효 코어 갯수를 가졌다고 평가받던 라데온은, GCN을 기점으로 온전한 풀 스펙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HD 6970은 384개의 VLIW4 유닛으로 1536개의 스트림프로세서를 '모사'했지만 HD 7970은 2048개의 순수한 스트림프로세서를 탑재했고, 따라서 성능 역시 급격한 상승을 이뤘습니다.
이후 폴라리스에 이르는 동안, GCN 1.1, 1.2를 거쳐 이런저런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GCN 자신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와 같은 급진적인 변화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라데온 RX 480에 사용된 GPU는 폴라리스 중에서도 '폴라리스 10'이라 이름붙여진 것입니다. 36개의 컴퓨트 유닛과 144개의 TMU를 탑재했다는 사실은 알려졌었지만 ROP가 몇 개인지 등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많은 이들을 궁금하게 했는데, 일단 32개의 ROP를 갖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내부 구조만으로 보면 하와이보다는 통가에 좀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간 전혀 개선이 없던 개별 스트림프로세서(정확히는 컴퓨트 유닛 단위) 차원의 개선이 행해져, 폴라리스의 경우 하와이보다 CU당 성능이 15% 더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웨이브 인스트럭션 버퍼의 용량이 증대되고, L2 캐시 용량이 두 배로 늘었으며, 새로운 알고리즘의 델타 컬러 압축(DCC) 기술을 도입해 유효 대역폭을 늘리는 등의 조치가 이 15%라는 숫자 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앞서 3세대 GCN(통가, 피지)을 발표하면서도 AMD는 DCC에 관한 언급을 특별히 분량을 할애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폴라리스는 심지어 이때보다도 더욱 고효율의 압축이 가능해져, 통가/피지와 비교하면 1.2배 정도 더 높은 대역폭을 가지며 하와이보다는 무려 1.4배 정도의 대역폭 효율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산술적으로 생각해 보면 동클럭에서조차 256bit 폴라리스는 384bit 하와이와, 384bit 통가는 512bit 하와이 이상의 대역폭을 갖게 됩니다.
또한 두 배 증대된 L2 캐시는 메모리 대역폭을 더욱 효과적으로 '은폐해 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캐시 용량이 늘어난 만큼 캐시 미스의 가능성이 감소하고, 캐시 미스가 아니라면 구태여 (GPU 자신보다 훨씬 느린) 메모리에 접근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폴라리스는 기존 세대 아키텍처보다 대역폭에의 의존도가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마침 우리는 모두 이미 비슷한 전략을 마이크로소프의 XBox One, 엔비디아의 맥스웰 GM107(GTX 750 시리즈)에서 본 바 있습니다.
또한 폴라리스를 논하며 여기 적용된 14nm 핀펫 제조공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그동안 풀 노드는 물론이거니와 하프노드까지 알뜰하게 훑어 가며 마이그레이션을 해 오던 양대 GPU 제조사들은 2011년의 28nm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손을 놔 버렸습니다. 그 뒤를 잇는 새로운 공정에 진입하기까지는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노드 역시 풀 노드로만 두 세대를 건너뛴 초대형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기적인 측면에서 AMD는 플립플롭의 개선에 주력했습니다. 플립플롭은 순차 회로를 설계할 때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칩이 클럭에 동기화되어 작동하도록 해 주는 장치이며 가장 기본적인 메모리 회로입니다). 실제로 칩을 동작시키는 클럭 신호는 대부분 플립플롭의 클럭 입력단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각개 플립플롭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두 개의 래치로 만들어지는데 플립플롭의 동작에 따라 클럭 트리에 인버터를 추가해서 클럭 입력단에 투입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여러 비트의 플립플롭의 클럭 입력단이 모두 개별적인 인버터를 갖고 있었지만 위 그림과 같은 클럭 트리 최적화를 통해 누설 전류와 칩 면적 양쪽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최적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칩 단위에서 4~5%의 TDP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종합적으로 폴라리스는 전세대 대비 15%의 IPC 향상, 14nm 핀펫이라는 신 제조공정 도입에 힘입은 전력효율 개선과 미래지향적인 각종 기술들을 탑재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슬라이드는 오늘의 주인공,
바로 라데온 RX 480입니다.
2. 라데온 RX 480을 만나다 (동영상 프리뷰)
라데온 RX 480 리뷰를 준비하며, 언더케이지와 컴퓨터 하드웨어로는 첫 콜라보를 진행해 그간 IYD가 제공해 온 성능 리뷰보다도 더 다채롭고 재미있는 컨텐츠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중 하나인 동영상 프리뷰를 함께 소개해 봅니다.
라데온 RX 480의 외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하 AMD 공식 제공 이미지)
우선 6핀 보조전원 하나만, 그것도 하우징 한복판에 드러나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그만큼 기판 길이가 짧고 소비전력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PCI-Express 슬롯을 통해 75W, 6핀 보조전원을 통해 75W를 공급받을 수 있으므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150W가 라데온 RX 480의 소비전력 상한이 됩니다.
이외에, 유사한 디자인 언어를 가졌던 라데온 300 시리즈의 레퍼런스 쿨러와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RADEON의 폰트가 바뀌어 좀더 미니멀하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글자가 새겨진 유광 부분의 재질이 금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는데, 색상이 주변부와 비슷한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한층 차분한 느낌을 주지만 아무래도 재질 자체가 풍기는 저렴함을 덮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저희가 공수한 라데온 RX 480 두 장을 언더케이지가 예쁘게 찍어 주신 사진들입니다. 현재 크로스파이어 벤치마크도 준비 중이니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외관 감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성능을 검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2의 라데온 HD 4800 시리즈가 되고자 하는 폴라리스 10, 라데온 RX 480의 실력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요?
3. 벤치마크 결과 : (1) 3DMark Fire Strike
4. 벤치마크 결과 : (2) Unigine Valley 1.0
5. 성능 분석
세부 벤치마크 결과를 모두 포함하면 스크롤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25종의 벤치마크 결과는 본문에서 생략되었습니다. 생략된 벤치마크 결과는 IYD의 전체 글(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부 벤치마크 결과 없이 아래 부분만 읽으셔도 본 리뷰를 이해하시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건 각양각색의 성능특성을 보이는 여러 테스트 항목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개별 테스트 결과로는 파악할 수 없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종합 성능 분석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 장에서는 해상도별로 결과들을 모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FHD 해상도에서의 결과입니다.
먼저 두 장의 그래프 중 위(▲▲)를 살펴봅시다. 안티알리아싱이 적용된 경우와 적용되지 않은 경우로 나눠 각각을 따로 분석했는데 일단 FHD 환경에서는 서열이 변한다든지 하는 큰 지각변동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래픽카드에 걸리는 부하가 점점 커지는 고해상도 환경의 경우 안티알리아싱이 더해지면 각 그래픽카드의 특성에 따라 서열이 급변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니 눈여겨 보시면 재미있을 부분입니다. 일단 여기서는 안티알리아싱이 적용된 경우 일제히 15~25% 정도의 성능 하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위(▲▲)의 그래프가 단순히 모든 테스트 항목에서 측정된 프레임레이트를 합산한 것에 불과한 반면, 그 아래(▲) 그래프는 각각의 프레임레이트에 대한 기하평균(geometric mean)을 구해 라데온 RX 480을 기준으로 상대성능값을 표기한 것입니다. 단순 프레임 합산은 프레임레이트의 스케일이 큰 게임(수백 프레임)이 그렇지 않은 게임(수십 프레임)보다 과대평가되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변의 성능 비교를 위해서는 기하평균값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FHD에서 라데온 RX 480의 성능은 지포스 GTX 970과 980의 사이라고 종합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티알리아싱이 적용된 경우만 따로 떼어 보면(↖) 970과의 격차는 조금 더 벌어지고 980과의 격차는 반대로 조금 더 줄어드는, 상대성능이 조금 상향되는 효과가 관측되었습니다. 또한 다이렉트X 12 테스트 항목만 모아 본 경우(↗)에는 980마저 넘어서고 라데온 R9 390과 390X 사이의 성능대에 안착하여 큰 순위 변동이 있었습니다. 라데온이 지포스보다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 강세인 것은 오래 전부터의 추세이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같은 라데온끼리의 비교에서도 폴라리스가 이전 세대 GCN보다 다이렉트X 12 환경에 '더욱'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다음으로 QHD 해상도에서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위(▲▲)의 그래프에서, 안티알리아싱 적용시 처음으로 순위 변동이 관측된 것입니다. 라데온 R9 390X는 앞서 FHD는 물론이고, QHD에서도 안티알리아싱 미적용시의 프레임 합산은 지포스 GTX 980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티알리아싱이 적용된 테스트 결과값만 따로 모아 보니 순위가 역전된 재미있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여기에서도 라데온 RX 480의 성능은 일반적으로 지포스 GTX 970과 980의 사이,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 980과 980 Ti의 사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건, 이전까지 시장에서 비슷한 가격대(199달러~249달러)에 포진하고 있던 전세대 제품들 - 라데온 R9 380X와 지포스 GTX 960과의 비교입니다. 라데온 RX 480은 이들을 각각 26%, 46%라는 큰 격차로 누르며 해당 가격대의 스위트 스팟을 정확히 겨냥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물론 MSRP 기준입니다.)
마지막으로 UHD 해상도에서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우선 위(▲▲)그래프에서, 안티알리아싱 적용시 라데온 R9 390마저 지포스 GTX 980을 넘어서게 된 것이 눈에 띕니다. R9 390이 한세대 전의 R9 290X와 거의 같은 성능을 지녔고, 2년 전 최초의 맥스웰 아키텍처 기반 하이엔드 그래픽카드로서 GTX 980이 소개되었을 때 '하와이는 망했다' 같은 뉘앙스가 업계와 커뮤니티를 뒤덮었던 것을 생각하면, 2년이 지난 지금 무서운 뒷심을 보이고 있는 GCN 아키텍처에 경외감마저 들 지경입니다. 작년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뭇매를 맞은 R9 Fury X 역시 아래(▲) 상대성능 비교에서 종합적으로 이미 GTX 980 Ti를 5%p 차이로 넘어섰으며,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는 R9 Fury마저 GTX 980 Ti를 능가하고 R9 Fury X는 GTX 1070과 동급의 성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2년 전, 하와이가 GTX 980을 경쟁 상대로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하와이는 미래지향적 설계를 가졌다' 는 항변은 마찬가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당시로서는 그런 항변은 그저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죠.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누구도 하와이가 GTX 980의 라이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라이버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성능이 올라가는 신비로운 마법도 있었거니와(솔직히 2년이 지나도록 성능 향상이 있다면, 처음에 드라이버를 만든 팀을 조져야 된다고 봅니다) PC 업계에서는 "미래" 라는 것이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조금 빨리 도래한다는 사실. 이걸 유념해야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작년 이맘때, GTX 980 Ti는커녕 980 비레퍼의 라이벌쯤으로 격하되며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R9 Fury 시리즈는 오히려 요즘 들어 GTX 980 Ti의 대체재로 빠르게 인식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며, 오늘날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의 벤치마크 결과가 예고하듯 어쩌면 내년 이맘때쯤엔 GTX 1070과 자웅을 겨루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그래픽카드 교체주기가 1년 미만인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용할 그래픽카드를 고르는 전략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6. 소비전력 및 기타
최종 결론부로 달려가기 앞서, 여태껏 '성능적 평가' 를 숨가쁘게 수행해 왔으니 마지막으로 '비 성능적 평가' 를 소개하며 글의 대단원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라데온 RX 480과 이번 테스트에 사용된 대조군들의 소비전력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테스트 구간은 메트로 : 라스트 라이드 리덕스의 자체 벤치마크 툴 플레이 구간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라데온 RX 480의 전성비는 맥스웰보다는 좋고 파스칼보다는 나쁘며, 역대 어떤 라데온 아키텍처보다도 압도적으로 좋습니다. 비유하자면 '탈 AMD' 급의 전성비를 비로소 달성해 엔비디아의 메인스트림 라인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타겟으로 설정하고 나온 지포스 GTX 970에 대해서는, 성능은 GTX 970보다 더 좋으면서도 소비전력은 더 적다는 단 한 문장으로 비교우위를 압축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급격히 전성비가 좋아진 것이 과연 단 한 세대의 아키텍처 개선에만 의한 것이냐... 고 묻는다면,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과 비슷한 감정을 라데온 R9 나노를 리뷰할 당시에도 느꼈는데, 분명 전력소비가 줄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R9 Fury X에 쓰인 것과 똑같은 피지 칩셋이 두어달만에 전성비가 극적으로 좋아진 것이라고 해설을 달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루션은 의외로 평범한 곳에 있습니다. 바로 인위적인 강력한 TDP 리미트를 걸어 둔 것. 발열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TDP 리미터가 발동되면 클럭이 떨어집니다.
앞서 R9 나노의 경우, GPU에 부과되는 로드가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클럭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RX 480 역시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FHD 해상도에서 전체 테스트 항목에 걸쳐 관찰된 평균 클럭은 1200MHz로 공식 사양인 1266MHz와 비교하면 약 5.2%의 하락이 있은 것입니다. QHD에서는 그 폭이 6.1%로 늘어 평균 1189MHz를 찍었고, UHD에서는 한층 늘어난 7.3% 하락 / 1173MHz라는 결과값을 얻게 되었습니다.
R9 나노의 경우, 드라이버상에서 TDP 리미트를 해제 (엄밀히 말하면 해제는 아니고, 상한선을 % 단위로 올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50%가 상한) 할 경우 사실상 R9 Fury X와 똑같아지는 것으로도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오버클럭 테스트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지는 못했으나, RX 480 역시 TDP 리미트를 +50%로 설정하고 돌려 보았을 때 적어도 1266MHz가 칼같이 고정되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버클럭과 관련해서는 현재 여러 재미있는 이슈가 현재진행형으로 불거지고 있는 중이니 여러 하드웨어 커뮤니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7. 결론
마침내 결론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라데온 RX 480의 특징은, 아래의 네 문장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 오버클럭을 배제하고, 순정 상태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평가한 것입니다.)
- 지포스 GTX 970보다 빠르다
-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는 지포스 GTX 980보다 빠르다
- 그러면서도 소비전력은 GTX 970보다 적다
- 이 모든 것을 GTX 970의 2/3 가격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지막 명제는 국내가가 오히려 GTX 970보다도 비싼 것으로 드러나며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입니다. (어떤 이에 따르면 GTX 970 재고 해소를 위해 의도적으로 RX 480 가격을 높게 잡고 있다고도 합니다.) 물론 가성비가 1.5배나 변동되었다는 점은 해당 제품에 대한 평가를 매우 크게 달리할 수 있는 큰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바고가 풀린 이후 지금까지 약 30시간여 동안의 여론의 흐름에는 분명 안타까운 대목이 있습니다.
라데온 RX 480은, 상술한 '사문화된' 가성비 조항을 제외하고라도 나머지 세 가지 특징만으로도 상당한 매력을 가진 제품입니다. 무엇보다 AMD가 공언했던 모든 약속을 지킨 채 등장한, 근래 몇 안되는 '정직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출시 초반의 저평가 분위기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 글의 결론부는, 말을 할 수 없는 RX 480을 대신에 그를 위한 반론권을 대신 행사해주는 것으로 갈음할까 합니다.
AMD가 폴라리스를 공식석상에서 거론하며 처음 공언했던 것. 다름아닌 "VR의 최저선을 민주화democratize 하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올해 초 오큘러스VR과 HTC Vive 등이 공개되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최소 사양으로 상정한 것이 바로 지포스 GTX 970 또는 라데온 R9 290이었습니다. 즉 폴라리스 10은 처음부터 이들을 대체할 목적으로 나온 것이고, 지금까지의 벤치마크 결과를 통해 보셨듯 이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하고도 남았습니다.
또한 라데온 RX 480이 가시화되며 급격히 기대성능이 부풀기 시작해, GTX 980을 가볍게 넘는다거나 심지어 GTX 980 Ti를 잡는다, GTX 1070도 넘볼 수 있다 등으로 소문이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정작 AMD는 컴퓨텍스에서 개최한 컨퍼런스에서마저 이를 불식할 수 있는 단서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바로 라데온 RX 480 2장으로 GTX 1080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 RX 480 x 2 CFX = GTX 1080
- (앞서 지난 4월, 엔비디아 슬라이드에서) GTX 1080 = GTX 980 x 2 SLI
- 위의 두 명제로부터 RX 480 x 2 CFX = GTX 980 x 2 SLI
여기서, 크로스파이어의 효율이 SLI보다 전통적으로 좋았음을 생각하면 단일 RX 480의 성능은 GTX 980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충분히 추론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실제 저 역시 위의 두 조건을 바탕으로 RX 480은 GTX 970~980 사이의 성능이리란 기대를 했고, 정확히 기대만큼의 결과를 보게 되었죠.
만약 지금 480에 쏟아지는 실망과 비난이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다면 초점이 조금 잘못 맞춰진 것 같습니다. AMD는 정확히 공언한 대로 신제품을 내 놓았고, 파스칼보다 전성비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해당 성능대와 해당 가격대 모두에서 전성비가 가장 좋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면 기대성능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여론 주도자들과 지금의 가격을 형성한 모든 주체들 -수입사, 유통사 등- 을 향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글을 끝맺기 전에 간단히 짚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얼마 전 '올 한해 가장 뜨거운 감자, 폴라리스와 Zen'(링크) 글에서 짤막하게 알려드린 것처럼 차세대 아이맥과 맥북프로에 폴라리스 기반의 그래픽 칩셋들이 투입될 것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먼저 폴라리스는 14nm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현재까지 맥에 탑재되어왔던 그 어떤 그래픽 칩셋에 비해서도 우수한 전력대 성능비를 제공할 것입니다. 만약 애플이 전력 사용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기존의 한 세대 차이에 비해서 훨씬 큰 성능 향상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애플이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결정을 내린다면 적당한 정도의 성능 향상과 더불어 더 얇아지고 더 조용해진 맥북프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사용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무척 감사드리고, 엠바고를 훌쩍 넘겨서 늑장 리뷰를 올리게 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는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시는 여러분께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읽을거리, 풍성한 컨텐츠로 찾아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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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Daeguen Lee (홈페이지)
하드웨어를 사랑하는 수학 전공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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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IYD - Inside Your Radeon RX 480 : HD 4850의 현손, 2008년의 재현을 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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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해 가장 뜨거운 감자, 폴라리스와 Zen : 라데온 HD 4800의 영광 재현하려는 A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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