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 아이패드 프로 소개 영상 중 캡처
애플의 자체 설계 프로세서인 A6칩을 탑재한 아이폰 5 이래로 새로운 아이폰 출시행사에서 공개되는 애플의 새로운 자체 디자인 칩은 매우 큰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작은 코어를 여러 개 집적하는 방법으로 전체 성능을 스케일 아웃 하고있는 범 안드로이드 진영과는 달리 애플은 코어 크기를 꾸준히 늘리되, 코어 수는 계속해서 듀얼코어로 붙들어매는 스케일 업 방식의 성능 향상을 추구했습니다. 현 세대 최신 아이폰과 아이패드 프로에 탑재된 A9, A9X칩은 Twister 듀얼 코어로 개별 코어의 너비가 인텔의 그것과 비견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오늘 글에서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애플과 범 안드로이드 진영이 추구하는 서로다른 성능 향상의 전략이 아닙니다.
최근 몇 세대 동안 모바일 프로세서의 성능은 꾸준히 향상되어 왔지만 사용자들의 체감성능 향상은 점점 둔화되고 있습니다. 모바일에서 구동할만한 앱들은 이미 전 세대의 프로세서만으로도 충분한 속도로 구동될 수 있습니다. 제조사가 제품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투입하는 갖가지 노력들이 사용자 경험으로 치환되는 정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PC 시장에서도 이미 경험했던 변화이며, 지난 글(링크)에서 이제는 단순히 성능을 높이는 것을 뛰어넘어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도 이제 성능보다는 사용자 경험으로
스마트폰 역시 그 자체로 개인용 PC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스마트폰은 원래부터 성능 외적인 요소가 훨씬 큰 영향을 주는 제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은 일반 PC시장보다 선도적으로 사용자 경험이라는 가치에 집중했고, 현재도 그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단 스마트폰 역시 성능 향상이 사용자 경험의 향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해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향상되는 성능을 어떤 식으로 '사용자 경험'이라는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애플은 스케일 업 방식의 성능 향상과 시각적인 만족감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그래픽 칩 성능의 강화를 통해 성능 향상과 사용자 경험을 연결짓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만 이미 몇 세대 전의 아이폰 리뷰에서부터 '늘어난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없다'는 점을 지적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WWDC에서 애플은 모바일 기기의 강력한 프로세서의 사용법을 한 가지 제시했습니다. 바로 모바일 기기에 투입되는 약한 인공지능에 필요한 연산을 기기 자체의 프로세서에 할당하는 것입니다.
* WWDC 16 영상 중 캡처
iOS 10은 여러 가지 새로운 기능들로 무장했는데, 애플이 특히 강조한 것은 아이폰이 좀 더 개인적인 비서처럼 동작한다는 것입니다. iOS 10에서는 QuickType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LSTM이라는 딥러닝 기법을 사용해 상대의 질문의 문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내가 자주 사용한) 문구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등 iOS 9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동작하며 그 덕분에 실제 사용상에서 QuickType 기능이 제시해 준 단어를 선택하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음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 WWDC 16 영상 중 캡처
또 사진 앱 역시 큰 변화를 겪었는데요. 역시 딥 러닝 기법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맥의 iPhoto, Photos에서 제공되던 기능인 얼굴 인식 기능이 iOS의 사진 앱에 이식된 것을 넘어서 사진에 있는 물체나 장면 역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위 사진의 경우 물 위에서 말을 탄 두 사람의 사진이라고 시스템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에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이용해 제공되던(사진이 찍힌 시간, 장소) 각종 분류, 검색 기능이 더욱 정교해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 WWDC 16 영상 중 캡처
이런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사진 앱은 '추억' 기능을 제공합니다. 사용자가 별도로 지정해 줄 필요 없이, 제주도에 며칠간 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면 운영체제는 자동적으로 이를 '제주도 여행' 이라는 추억으로 만들어줍니다. 운영체제는 평소에 찍히던 사진들과 다른 지역에서 몇일 간 연속해서 찍힌 사진들을 보고 사용자가 여행을 갔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특정 사람과 많은 사진을 찍었다면 특정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제시해주는 추억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요.
기존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이런 서비스들은 애플이 처음 제공하는 게 아닙니다. QuickType이나 시리의 제안 등은 구글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형태의 기능이며 사진 앱의 새로운 기능들 역시 여러 사진 어플리케이션, 구글 포토 서비스 등에서 각각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들입니다. 하지만 애플의 서비스는 그것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개인의 기기에서 모든 연산이 이루어진다'라는 점입니다.
얼핏 들어서는 내 기기의 리소스를 사용해 연산하는 저 내용이 왜 강점이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능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봅시다.
QuickType 기능은 기본적으로 내가 평소에 특정 앱에서 사용하는 대화 내용과 더 나아가 상대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모두 분석해야 제공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사진 앱의 각종 기능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얼굴 인식부터 시작해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각종 기술들은 내 사진을 시스템에 투입하여 그 결과값을 얻어내야하는 기술입니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그리고 내가 찍은 소중한 사진들이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대화에서 맥락을 찾고 사진을 분석하는 각종 연산이 내 컴퓨터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 대화와 사진이 특정 서버로 전송되는 것을 넘어서 내 대화와 사진들이 해독된 상태로 알지 못하는 시스템에 의해 분석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이런 방식은 중앙 집중된 시스템 구현이 편하고 사용자의 데이터를 이용해 시스템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습니다.
* 애플 iOS 10 미리보기 페이지
하지만 애플은 좀 더 험난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학습용 데이터로 사용하지 않고, 완성된 소프트웨어의 형태로(업데이트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개별 기기에 공급합니다. 시스템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등의 작업에 경쟁사보다 더 큰 노력이 들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가치보다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애플은 단지 자신들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드파티 개발자에게도 이런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권장합니다. 이번 WWDC에서는 딥 러닝을 앱에 적용시키는 기법을 별도의 세션을 통해 설명했을 뿐 아니라 메탈 API를 개량했습니다. 개량된 메탈 API를 통해 이런 형태의 연산을 iOS기기에 탑재된 GPU에 할당하는 방법 역시 별도의 세션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개발지원은 소비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장을 움직일 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 본격적인 GPGPU 연산이 도입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WWDC 16 세션 슬라이드, What's New in Metal(위), Neural Networks and Accelerate(아래)
애플은 잉여 연산자원을 어떻게 사용자 경험의 증진으로 전환시킬 것이냐는 의문에 iOS 10을 통해 답을 줬습니다. iOS 기기의 강력한 연산성능은 사용자에게 딥러닝을 이용한 진보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좀 더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성능과 개인정보 보호의 상관관계
최근 애플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두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애플의 모바일 기기들은 AP에 있는 별도의 보안 인클레이브를 통해 보호됩니다. 거기에 더 많은 사용자들이 암호 잠금을 이용해 자신의 정보를 지키면서도 사용상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TouchID를 도입했습니다. 실제로 터치아이디 도입 전과 후에 아이폰을 암호로 잠근 사용자의 수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 각종 앱들, 특히 아이메시지 등은 전송되는 모든 정보를 공개 키 기반으로 암호화하여 양 쪽의 사용자들만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했습니다.
이번 WWDC에서도 이런 경향성은 두드러졌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APFS 역시 파일시스템 단에서부터 현재보다 훨씬 강력한 암호화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암호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용자의 불편 역시 유연한 볼륨 관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링크). 또, 딥러닝 등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각 사용자의 기기에서 연산이 이루어지도록 한 이번 결정 역시 이런 정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iOS 10이 정식 출시되어 시장에 배포되는 시점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 있습니다.
과연 애플 기기 사용자들은 기존에 비슷한 기능을 지원하던 구글포토 등 다른 서비스에서 애플의 서비스로 전환하게 될까요? 더 나아가 개인정보 보호가 이유가 되어 애플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질까요? 시장이 판단하는 개인정보 보호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부디 시장이 개인정보 보호에 큰 가치를 부여하기를, 그래서 개인정보 보호가 업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우뚝 서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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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Jin Hyeop Lee (홈페이지)
생명과학과 컴퓨터 공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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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iOS 10 프리뷰 : 성능과 개인정보 보호의 상관관계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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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시장을 움직이는 힘: 무어의 법칙에서 사용자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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