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5일 화요일

WWDC18: 무릎을 굽힌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2017년 후반~2018년 전반은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에게 있어서 잔인한 한 해였다. 2017년 9월에 공개된 iOS 11과 macOS 하이 시에라는 안정성 문제와 다양한 버그에 시달리며 2017년의 나머지를 보냈다. iOS는 1주일마다 버그를 잡는 업데이트가 등장했고, macOS도 출시 초반의 루트 접근 버그 등의 심각한 보안 이슈가 연달아 터지며 홍역을 치렀다. 2018년에 오면서 이런 버그들은 대부분 고쳐지고 안정이 되긴 했지만, 이미 소프트웨어 품질로 유명했던 애플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첫 공개 배포 후 9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이전 버전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애플에서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사태는 애플의 잘못이었고, 이 사태의 파장은 본인이 제일 잘 알 터. 그러다 보니 올해 초에는 애플이 일부 새로운 기능을 내년으로 미루고 올해는 안정성 개선에 중점을 둔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4일(현지 시각) WWDC 키노트가 열렸다. 이러한 예상은 현실이 된 듯하다.

쉬어가는 iOS 12

* iOS 12는 구형 기기의 성능을 끌어올린다.

아마 애플이 iOS 12 이야기를 WWDC에서 제일 먼저로 배치하는 일은 흔하지 않을 거다. 아니, 역대 WWDC 중 처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iOS만 다루었던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만큼 iOS 12에는 아주 눈에 띄는 새로운 기능은 별로 없다.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 아이폰 X에서 처음 선보인 애니모티콘처럼 만들 수 있는 Memoji와 사물 및 이미지를 추적하고, 동시에 같은 AR 환경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ARKit 2, 새롭게 디자인된 뉴스, 주식, 음성 메모 앱, 이름이 바뀐 애플 북스, 최대 32명까지 통화가 가능한 그룹 페이스타임 등. 아, 그리고 카플레이에서는 드디어 써드파티 지도 앱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카플레이용 티맵을 기대해보자)

하지만 iOS 12는 사실 애플이 그동안의 비판을 얼마나 주의 깊게 듣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애플은 iOS를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기능을 맨 처음에 배치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맨 처음이 바로 성능 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에 따르면, 잠금 화면에서 바로 카메라를 열 때의 속도가 최대 70%, 키보드가 나타나는 속도가 최대 50% 빨라졌다. 그리고 시스템이 무거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을 때에도 앱을 처음 실행할 때의 속도가 두 배 가량 빨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아이폰 7 플러스에 iOS 12 베타를 설치해본 결과 11.4를 설치한 아이폰 X보다도 인스타그램을 처음부터 여는 속도가 두 배 가까이 빨랐고, 피드를 새로고침하는 속도도 더 빨랐다. 일단 현재로서는 애플의 주장은 거짓이 아닌 듯하다. 애플은 이러한 성능 개선을 바탕으로 iOS 11을 지원했던 기기(아이폰 5s 이후의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 이후의 아이패드, 6세대 아이팟 터치)가 모두 iOS 12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애플이 iOS 12에서 강조한 또 다른 것은 바로 디지털 건강이다. 이 개념은 최근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대두됐다. 구글도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인 안드로이드 P에 비슷한 기능을 도입하기도 했다.

애플이 이 문제에 도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화면 시간이라는 새로운 설정이다. 이 설정에서는 하루 동안 앱 사용 내역을 정리해주며, 특정 앱의 사용 제한 시간을 정해서 중독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특히 부모님이라면 아이가 쓰는 아이폰에서 같은 설정을 적용하고, 자신의 아이폰에서 그 설정을 제어할 수도 있다.

또한, 알림 센터는 드디어 앱별로 알림을 묶어주며, 잠금 화면에 나타나는 알림을 탭해 해당 알림을 알림 센터에서 나타나지 않게 하거나 아예 알림 자체를 꺼버릴 수 있다. 이 기능이 이전 버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설정 안에서 일일이 해줘야 했다. 그리고 설령 사용자가 그 방법을 안다 하더라도 ‘나중에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까먹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방해금지 모드는 자는 동안에 아예 알림을 표시하지 않게 설정할 수 있고, 모드를 끄는 옵션을 좀 더 다양화할 수 있게 바뀌었다.

시리를 구원하기 위해 등판한 워크플로우

요즘 시리는 애플에서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물론 시리는 현세대 음성 비서중 가장 먼저 등장했지만, 경쟁사의 빠른 발전과 함께 빠른 속도로 뒤쳐졌다. 특히 올해 초에 시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스마트 스피커 홈팟이 등장하자 이 간극은 더욱 명확해졌다. 이번 WWDC에서 애플이 이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는 화제가 됐던 부분이기도 했다.

애플이 꺼낸 카드는 바로 워크플로우였다. 워크플로우는 iOS판 오토메이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앱을 한 번에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자동화 앱으로, 애플이 지난 2017년 초에 사들였다. 이후에도 워크플로우 앱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연 애플이 워크플로우를 무엇에 쓸 것인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애플은 이번 iOS 12에 시리 단축키를 추가했다. 간단히 말해, 워크플로우의 기능을 시리로 가져온 것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 부문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페데리기가 보여준 시연에서는 앱에서 자주 쓰는 액션을 “시리에 추가”해 아예 특정 문장을 할당하고, 그 문장을 시리에게 말하면 시리가 그 행동을 수행한다. 또한, 사용자가 설정에서 직접 새로운 액션을 추가할 수 있으며, 그 모습은 워크플로우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애플의 이러한 해법은 어떻게 보면 꼼수를 부린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시리의 부족한 부분을 사실상 워크플로우로 메꾸는 모양새니까. 하지만 오히려 이런 직접적 해법이 정확도를 높이는 건 사실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헷갈릴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설정한 말을 하면 되니 편하고 말이다. 본격적인 써드파티 앱 지원이 추가되면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강점에 올인하는 watchOS

watchOS 5는 사실상 애플 워치가 가지고 있는 강점에 올인하는 업데이트였다. 이는 크게 건강 및 피트니스 부분과 커뮤니케이션 부분으로 나뉜다.

프리젠테이션의 대부분은 건강 및 피트니스 부분에서 할애됐다. 일단 먼저, 애플 워치가 한 노인의 목숨을 살린 실화에 대한 영상이 먼저 방영되면서 애플 워치가 사용자들의 건강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강조됐다. 그리고 애플 워치의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활동 앱과 운동 앱의 개선점에 대한 소개가 계속됐다. 활동 앱의 경우, 친구와 7일 동안 움직이기, 운동하기, 일어서기를 누가 더 많이 달성하는가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여기서 이기는 사람은 특별한 배지를 받을 수 있다. 운동 앱에는 하이킹과 요가가 추가되었으며, 애플 워치가 직접 운동의 시작이나 끝을 감지하고 운동 세션을 시작하거나 끝내겠냐고 알림을 보내기도 한다.

통신 기능에서 애플이 제일 크게 소개한 기능은 바로 무전기 기능이다. 사실 이 기능은 2014년에 애플 워치가 공개됐을 때 기능 페이지에 설명이 있었지만, 출시 때 빠졌던 기능이다. 일단 다른 애플 워치 사용자와 상호로 통신 확인을 한 후, 애플 워치에 크게 붙어 있는 버튼을 누르면서 말하면 된다. 시리 워치 페이스에도 심박 수나 스포츠 관련 소식 / 지도 등이 추가되었다.

아 그리고 통신이라 하니 한국 관련 소식. 15일에 애플 워치 시리즈 3의 셀룰러 버전이 드디어 출시된다. 통신사는 SK텔레콤과 LG U+에서 사용할 수 있고, KT는 지원이 빠졌다.

macOS 모하비: 따로지만 따로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macOS. macOS가 WWDC의 주인공이 된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그간 애플은 맥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니까. 게다가 위에 썼듯이 하이 시에라의 버그 파티도 애플이 macOS에 다시 신경을 쓸 때가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목소리는 프로들 사이에서 더욱 심했다.

10.14 “모하비”는 이러한 대중의 시선에 대한 애플의 반응이라 볼 수 있다. 팀 쿡은 macOS 모하비를 소개할 때 “프로 유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애플이 맥을 이제 조금씩 다시 프로의 영역에 놓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준다. 스티브 잡스가 옛날에 PC를 “트럭”에 빗대 말했던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모하비에서 페데리기가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다크 모드였다. 고작 이틀 전에 유출되는 바람에 약간 김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존의 메뉴 바와 독뿐만 아니라 다른 UI 요소까지 어둡게 만드는 모습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 외에도 새로운 갤러리 뷰가 들어간 파인더와, 데스크톱에 늘어놓은 파일들을 종류별로 묶어주는 데스크톱 스택, 퀵룩에서 바로 마크업을 실행할 수 있는 기능, 강화된 스크린샷 UI, 그리고 아이폰의 카메라로 촬영 명령을 보낼 수 있는 “연속성 카메라” 기능을 선보였다. 거기에, iOS 11 때처럼 완전히 새로 쓰인 맥 앱 스토어도 선보였다.

하지만 모하비의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애플이 그간 많은 사람들이 했던 “macOS와 iOS가 합쳐지는 것인가요?” 질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거대한 No와 함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iOS 개발자들을 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프로젝트 마지판(Marzipan)이다.

마지판은 간단히 말해, macOS의 UI 프레임워크인 AppKit과 iOS의 프레임워크인 UIKit이 macOS에서 공존하는 형태를 취한다. 즉, iOS의 앱을 macOS로 거의 어떠한 코드 수정 없이 쉽게 가져올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애플은 이 기술을 웬만큼 완성시킨 듯하다. 이번 모하비에서 선보인 뉴스, 음성 메모, 주식 앱이 모두 마지판을 활용해 iOS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개발자들에게는 2019년에 공개되는데, 지금 모하비 베타에 탑재된 뉴스 앱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크롤 감이 좀 어색하고, 텍스트 크기도 이상하게 작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애플이 신경을 많이 썼다”라는 것이었다. 과연 마지판이 어떠한 새로운 맥 앱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개인정보보호에 올인

애플은 언제나 개인정보의 보호를 외쳐온 기업이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다른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행적을 추적해서 이를 이용해 돈을 벌어온 것에 비교해, 애플은 역으로 그런 기업들의 기술을 막는데 초점을 두었다. 특히 작년 하이 시에라와 iOS 11에 탑재된 사파리의 추적 방지 기능은 실제로 광고 업체들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기도 했다.

애플은 올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역시 사파리에 선보인 새로운 기능이 그것이다. 웹사이트에서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이나 공유 버튼에는 역시 각자의 추적 기능이 들어가 있는데, 이 부분을 아예 꺼버림으로써 이러한 웹사이트들의 추적을 막아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자가 원하면 다시 작동시킬 수도 있다)

또한, 사용자들의 기기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활용해 사용자를 추적할 수 있는 핑거프린팅(직역하면 “지문을 뜨는 작업”이라는 뜻이다)을 막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모하비와 iOS 12에서는 일부러 이러한 기기 특성을 일반화한 설정으로 위장시켜 핑거프린팅이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올해 초에는 특히 이러한 데이터 수집 기업이나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 광고 수익을 내는 기업들의 계속된 스캔들이 화제였던 때였다. 이 와중에 애플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유별나게 빛이 나는 것 같다.

정말 바라는 건 안 나왔지만, 그럼에도....

이번 WWDC 전에 여러분은 어떤 걸 바라고 있었는가? 한 지인은 이벤트 직전까지 나에게 계속 “새 아이패드 프로가 나오나요?”라고 물었다. (결국 당연히 나오지 않았고, 나는 올해 내로는 나오니까 좀만 더 버티라고 토닥해줬다) 사실 나도 하드웨어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애플이 맥북 프로에서 겪고 있는 키보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물론 그 해답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애플이 WWDC에서 발표한 내용은 충분히 애플의 2018년 행보에 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해줬다. 그간의 실수를 인정하고,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조금씩 엿보인다. 물론 그 노력의 결과는 1년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을 반복할 거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랄까.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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