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3일 금요일

오페라, '볼쇼이 솔리스트 오페라 갈라' - 놓치기 아쉬운 공연

볼쇼이 솔리스트 오페라 갈라

아나톨리 레빈 지휘, 올레 돌고프, 로리타 세메니나, 안나 빅토로바, 예브기니 카츄로브스키, 2016.


  근래에 부쩍 문화생활이 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활동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활동도요. 집에서 영화를 사서 보는 활동에서부터 밖으로 공연을 보러 가는 일까지 빈도도, 종류도 다양한데요. 오늘은 밖으로 나가서 본 공연의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무척 본격적인 공연이었어요. 볼쇼이 솔리스트 오페라 갈라쇼가 그 주인공입니다.


  240년 역사,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이라고도 하는 볼쇼이에서 내한해 오페라 일부분을 공연했는데요. 이런 형태의 공연도 오랜만이거니와 볼쇼이 오페라단의 주역 솔리스트를 언제 또 만나보겠습니까. 열 일 제쳐놓고 5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향했습니다.




볼쇼이 극장

  볼쇼이 하면 볼쇼이 극장 발레나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같은 게 떠오르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이 볼쇼이 극장은 올해로 건립 240주년을 맞이하는 유서 깊은 곳인데요. 1776년 최초 건립돼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발레 극장으로 손꼽히는 곳이죠.


  이곳이 얼마나 역사가 오래되었냐면, 실제 볼쇼이 극장에서 활약한 작곡가가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입니다. 이 작곡가의 음악을 지난 교향악 축제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 실제로 활동한 곳이라고 하니 저도 이렇게 적으면서 감회가 새삼 새롭네요.



  이번 공연은 볼쇼이 오페라단의 주역 솔리스트와 성악진이 내한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인 '예프게니 오네긴'을 콘서트 오페라로 1막에 선보이고, 2막에서는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공연했습니다. 실제 활동하고 있는 주역들이 내한했다고 해서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1부, '예프게니 오네긴' 중

  예프게니 오네긴은 러시아의 대문호인 알렉산드로 푸쉬킨의 동명의 운문 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알렉산드로 푸쉬킨은 이 작품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로 시작하는 시로 유명할 텐데요. 이 소설의 형식이 참 독특한 방식입니다. 저도 과거 교양으로 러시아 문학을 배웠을 때 언뜻 훑고 넘어간 기억이 나네요.


  이 예프게니 오네긴을 읽고 차이콥스키가 큰 감명을 받아 일부를 발췌해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오페라도 당시엔 무척 실험적인 오페라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푸치니나 바그너의 서사적이고 극적인 오페라 형식이 아닌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치중한 서정적 오페라라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페라를 보다 보면 작품의 서사를 이어가기보다는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인물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엔 도전적이었던 이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은 1881년 볼쇼이 극장에서 정식 초연해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까지 사랑받는 오페라라고 합니다.



  예프게니 오네긴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1820년대 제정 러시아 시기에 있던 상류층 귀족 '예프게니 오네긴'. 당시 아버지에 이어 화려하고 방탕하게 살던 그는 이내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지는데요. 큰아버지의 재산 상속을 계기로 시골에 들어가 이것저것 시도를 하지만, 제대로 이룬 것 없이 권태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렌스키라는 청년 지주[각주:1]와 친구가 되고 그의 약혼녀인 타치야나와 올가 자매가 사는 곳에 방문하게 됩니다. 올가는 렌스키와 약혼한 상태였고 올가의 언니인 타치야나는 세련된 도시 멋쟁이 예프게니 오네긴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타치야나가 용기를 내 구애편지를 보내나 예프게니 오네긴은 이를 냉정한 어조로 훈계하며 거절합니다.



  그러던 중 타치야나의 생일 파티가 열려 참석한 자리. 오네긴은 자신에게 수군거리는 시골 사람들에게 대한 짜증으로 렌스키를 골려줄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그의 약혼녀 올가와 춤을 추며 그녀를 꾀는데요. 이 과정에서 직선적인 렌스키가 격분해 오네긴에게 결투를 하고 다음 날 결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결정을 서로 후회하죠.


  그러나 결국 숲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투 끝에 오네긴의 피스톨이 렌스키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오네긴은 절망하며 그곳을 떠나죠. 약혼자를 잃은 올가는 다른 약혼자를 만나 결혼하고 언니 타치야나는 부모님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늙은 장군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오랜 방랑을 마치고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오네긴. 그곳에서 오네긴은 세련되게 바뀐 타치야나를 보게 됩니다. 정복욕이 불타오른 오네긴은 타치야나에게 구애를 하지만, 타치야나는 흔들리는 감정을 누르고 그의 손길을 뿌리친 채 떠나간다는 게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오페라는 이 중요 장면을 1~3막으로 나눠 보여줍니다.



  러시아어로 진행된 공연은 뒤에 자막이 표시돼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오케스트라 연주는 코리아 COOP 오케스트라가 맡고, 지휘는 아나톨리 레빈이 맡았습니다. 테너는 올렉 돌고프, 소프라노 로리타 세메니나, 메조소프라노 안나 빅토로바, 바리톤 예브기니 카츄로브스키입니다. 바리톤이 1막에서 오네긴 역할을 맡았던 통에 이름이 비슷해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태 정식 오페라를 관람해본 적이 없던 터라 오페라라는 장르에 무지하기도 했거니와, 오페라 콘서트라는 형식 때문에 언제 박수를 보내야 할지 조금 어려웠습니다. 오페라 배역을 맡은 가수들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타치야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목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공연 중간에 기침을 하거나 노래를 하다가 목잠김이 오는 등 조금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2부에 소프라노가 중심이 되는 곡인 <파우스트> 중 "보라,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부르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예프게니 오네긴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오페라라 저도 가기 전에 영상을 짧게 보고 갔는데요. 아직 충분히 적응하지 못해서인지 기대했던 것만큼 극적이진 않았습니다.


2부, 유명 오페라 아리아

  이랬던 생각은 2부로 넘어가 유명 오페라 아리아로 넘어가면서 마음을 고쳐먹게 됐습니다. 한 곡이 배우의 건강 문제로 빠졌지만, 앙코르를 포함해 총 10곡의 유명한 곡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개중에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곡이 많아서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악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만큼, 오페라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곡들의 나열이라고 하는데요. 작곡가의 면면을 보더라도 화려합니다. 첫 곡부터 베르디의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 서곡이었거든요. 이 곡은 베르디의 보기 드문 희극 오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돈 조반니>, <돈조니> 등 모차르트의 유명 오페라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부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솔리스트는 테너였습니다. 1부에서는 테너가 렌스키 역을 맡아 금세 퇴장하고 말았는데요. 2부에서는 테너 단독 곡이 있어 테너의 노래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에서 테너 성량이 폭발했어요. 같이 본 동생도 이 곡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곡이었던 오페라 <라 보엠> 중 "오, 사랑스러운 아가씨"도 좋았는데요. 소프라노와 테너가 함께 부르는 곡이었는데, 아무래도 소프라노 건강에 문제가 있었는지 소프라노 목소리에 탁기가 돌아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1부에선 올가역을 맡아 제대로 매력을 뽐내지 못한 메조소프라노는 일곱 번째 곡인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에서 집시 카르멘이 돼 돈 호세를 유혹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원체 유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좋기도 참 좋았습니다. 잘 몰랐던 가사가 뒤에 자막으로 표시돼 무슨 뜻인지 알고 들으니 더 좋더라고요.


  2부 마지막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폴 포츠가 부른 것으로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역시 테너가 맡았고 무척 좋았습니다. 앙코르는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와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가장 마지막 곡인 "축배의 노래"는 모두가 함께 불러서 좋았습니다.




  보기 드문 공연이라 연신 감탄하면서 보고 왔습니다. 뮤지컬과 비교해 오페라는 한층 음악이 강조된 형태라고 해서 지루하면 어떡하나 싶어 걱정도 많았는데요. 교향악축제 등을 겪으면서 조금은 성장한 덕분인지, 아니면 공연 자체가 재미있었는지 쉴 새 없이 몰입해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보고 와 집에 도착해선 들었던 곡들을 다시 찾아 며칠 동안 열심히 들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무척 즐거운 기억이라 조금 늦게나마 정리했습니다. 언제고 정식 오페라 한 편을 관람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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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엔 무려 봉건제가 폐지되기도 전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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