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새삼스레 느낀 계기가 오늘 간단히 소개할 플러스마이너스제로(±0) 계산기인데요.
몇 주 잠깐 쓸 일이 있어서 쓰다가 만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그 계기를 가볍게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계산기가 계산만 잘 되면 되지."
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계산기를 열심히 뒤져보던 저는 처음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 이야기를 꺼낸 분은 평소에 섬세한 디자인 감각으로, 제품 하나를 골라도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쓰시는 분이었거든요.
디자인 감수성이 예민하신 분이 디자인의 효용 가치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듯한 말투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반대로, 저는 이왕 잠깐 쓸 것. 예쁘고 손이 가는 걸 고르자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계산만 잘 되는 계산기도 있고, 영원한 스테디셀러 카시오 계산기 JS-20TS 같은 계산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산기의 기본 기능은 두루 갖추면서 '깔끔한 계산기'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1
결국, 장고 끝에 결정한 계산기는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계산기, 이른바 플마제 계산기였습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
플러스마이너스제로라는 브랜드를 아시나요? 저도 이번에 찾으면서 알게 된 브랜드입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 브랜드. 마니아가 확고한 브랜드인데요. 우리에겐 무인양품 혹은 무지(MUJI)로 유명한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가 제안한 브랜드라고 합니다.
본능적으로 제품에 감동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만들자는 신조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지금도 다양한 제품이 꾸준하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브랜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딱 적당하게'를 추구하는 브랜드라고 하는데요. 이런 브랜드 소개를 보고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를 봤더니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는 총 세 종류가 있습니다. 흰색, 검은색,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까지 세 종류인데요. 저는 평소에 잘 안 고르는 색인 노란색을 골랐습니다. 살짝 겨자빛이 도는 노란색이 눈을 사로잡더라고요.
처음에 계산기를 손에 들고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계산기가 갖춰야 할 기능은 고스란히 갖춘 채,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버튼 하나도 튀지 낳고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 그러면서도 글씨는 눈에 뚜렷하게 들어오도록 표시한 모습, 정갈한 액정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게 없습니다.
바닥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패킹이 붙어 있고요. 상단에 작게 브랜드 이름(±0)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단이 살짝 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살짝 구부러진 형태는 책상에 두고 썼을 때 화면을 눈으로 보기 쉽게 의도한 결과라고 합니다. 앞서 지인이 말한 것처럼 계산기는 계산을 잘해야 하는 게 기본이거든요.
디자인이 어수선해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결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두번세번 손이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최대 입력 자릿수는 12자리입니다. 이 이상의 계산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용도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계산도 골고루 지원하는데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같은 사칙연산에서부터, 버튼 하나로 지원하는 세금 계산, % 계산, 메모리, 누계 계산 같은 기능까지 담았습니다. 단순 계산을 넘어 가벼운 업무용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었습니다.
상단의 레버를 조절해 반올림 설정 기능, 표시되는 소수점 자릿수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도 들어가지만, 상단에 있는 태양광 패널로 배터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는 1천 시간 가까이 쓸 수 있습니다.
계산기의 생김새를 보면 자꾸만 빠져듭니다. 계산할 일이 없는데도 자꾸 만져보고 싶어요. 책상 어디에 두더라도 한 번쯤은 저절로 눈이 닿는 계산기입니다.
오래 버튼을 쓰다 보면 살짝 아쉬운 부분이, 버튼의 깊이감입니다. 조금 더 확실하게 눌리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를 구하는 과정에서 놀랐던 건, 계산기에서 디자인을 따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분야의 물건은 디자인을 따지면서, 또 다른 어떤 분야는 디자인이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입니다.
그러므로 취향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누군가에겐 단순히 '계산이 되는 도구'가 아니라 책상 위에 올려두는 '감각적인 데스크 용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많은 글을 쓰기에 키보드에 신경을 쓰고, 자기만족을 위해 ESC를 덧대어 줬듯, 누군가에게 이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도 그런 의미가 될 수 있겠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깔끔하면서 계산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계산기를 찾으신다면 적어도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자꾸만 손이 가고 싶게 만드는 계산기.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소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 사진은 MS라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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