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WWDC는 개발자를 위한 행사이다. 그리고 이번 WWDC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소프트웨어들이 그 내용을 장식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번 WWDC를 그냥 흘려 보낼 생각이 없었나보다. 오늘 애플의 기조연설은 시작부터 급했다. 팀 쿡은 무대에서 오늘 여섯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했다. 첫 번째 타자는 tvOS였다. 그리고 tvOS에게 허락된 시간은 찰나였다. 현장에 있던 내 느낌에는 연사가 올라오자마자 내려간 듯 했다. 당황하는 사이 두 번째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제 macOS에 대한 내용이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부사장이 이 급박한 분위기를 풀어줄 듯 말을 꺼냈다. 새 macOS의 이름이 하이 시에라란다. 당연히 농담이겠지. 진심이라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번 WWDC는 잡담할 시간따위 없는 이벤트구나.
페더리기가 macOS 하이 시에라를 소개하고 난 뒤, 곧바로 맥 하드웨어 업데이트가 있었다. 아이맥, 맥북, 맥북 프로 심자어 맥북 에어까지 거의 전 라인의 업데이트가 있었던 가운데 12월 출시를 예고한 아이맥 프로 역시 여기서 빼놓을 수 없다. 애플의 하드웨어 업데이트는 맥 라인업에서 그치지 않았다. 루머로 돌던 10.5인치 아이패드 프로는 실존하는 제품으로 밝혀졌다. 아이패드 12.9인치 모델 역시 최신 기술들로 무장해서 리프레시되었다. 하지만 애플은 여전히 할 이야기가 남았다. 여섯 번째로 지목된 애플의 새 홈 오디오 기기인 홈팟 말이다. 각 제품들의 구체적인 스펙 등을 다루는 글은 따로 포스팅했고, 본 글에서는 핸즈온 세션에서 직접 본 제품들의 느낌과 전체적인 스토리를 짚어보려고 한다.
아이패드 프로 2세대: 강력합니다
기조연설이 끝나고 핸즈온 세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러 간 제품은 새 아이패드 프로 모델이다. 이제 아이패드 프로에 9.7인치 모델은 없다. 좀 더 큰 친구인 10.5인치 아이패드와 그보다도 더 큰 12.9인치 모델 뿐이다. 애플이 화면 크기를 바꿀 때는 항상 그 이유도 설명하곤 했다. 9.7인치로 시작한 아이패드 모델에서 7.9인치 아이패드 미니가 파생될 때의 이유는 화면에서 객체가 작아질 수 있는 마지노선이 7.9인치라는 것이었다. 왜 하필 7.9인치냐고? 기존 아이패드와 완전히 같은 해상도를 유지하면서 포인트당 객체 크기가 아이폰 수준이 되는 게 7.9인치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작은 스마트패드는 그들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사용하려면 손가락을 깎아야 하고, 도착과 동시에 사망할 제품이었다.
* (애플 키노트 캡처)
이번에 화면 크기를 키우는 데는 풀 사이즈 키보드를 디스플레이에 표시할 수 있는 최소 크기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양쪽 옆의 컨트롤 영역들은 여전히 일부 잘려나가긴 하지만 적어도 주 타이핑 영역은 풀 사이즈 키보드로 화면에 표시할 수 있을 뿐더러 당연히 스마트 키보드 역시 풀 사이즈 키보드라는 조건을 만족한다. 사실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제품이라면 어찌보면 당연한 요구사항이 이제서야 만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새 아이패드 프로 10.5 모델은 기존의 9.7인치 화면에 비해 20% 더 넓어졌고, 픽셀 역시 20% 더 증가해 같은 픽셀 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 만나본 10.5인치 아이패드는 크게 낮설지 않았다. 확실히 좌우 배젤이 줄어든 것은 구분할 수 있었고, 이때문에 디자인이 기존의 아이패드에 비해 조금 샤프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패드 12.9인치 모델은 디스플레이나 성능 등은 최신으로 업데이트되었지만 디자인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기에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아이패드 프로 10.5인치 모델은 기존의 9.7인치 아이패드에 비해서는 20% 넓어진 화면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 모델과는 확실한 화면 크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이패드 프로 10.5인치 모델의 배젤이 줄어든 것과는 달리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 모델은 배젤 역시 기존과 동일해서 실제 기기의 체감 크기 차이는 더 심했다.
* (애플 키노트 캡처)
크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제쳐두고, 새 아이패드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디스플레이가 정말 좋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옆 테이블에 화면이 켜진 채 눕혀져 있는 아이패드는 순간 디스플레이 화면을 출력해 붙여둔 목업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디스플레이 품질이 좋았다. 이런 착각은 엄청난 저반사 코팅과 커버 글라스와 디스플레이의 라미네이팅, 매우 밝은 디스플레이에 주변 조명에 맞춰 화면의 색온도를 바꾸는 트루톤 디스플레이 기능이 합쳐져서 이뤄낸 것이었다. 그리고 더 비싼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트루톤 디스플레이, P3 색역을 지원하는 디스플레이 등을 품지 못했던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 모델 역시 이번 업데이트와 함께 이 모든 것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아이패드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최대 120Hz의 가변 주사율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존 모든 아이패드 디스플레이는 60Hz의 주사율을 가지고 있었다. 즉, 화면이 1초에 60번 그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눈은 일정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정지화면을 영상으로 인식한다. 1초에 60번 변하는 화면은 인간의 눈에 영상으로 보이기에 충분한 화면이며, 꽤 오랫동안 표준적인 주사율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인간의 눈은 더 높은 주사율을 볼 때 더 부드러운 영상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오버워치 열풍이 불 때 144Hz 주사율의 모니터가 불티나듯 팔려나갔음을 상기해 보자. 분명히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60Hz가 넘는 주사율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체감할 수 있다.
* (애플 키노트 캡처)
실제로 현장에서 새 아이패드 프로를 만져봤을 때 분명히 더 부드럽게 동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격렬한 움직임이 있는 게임화면이 아니라 그냥 iOS 애니메이션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새 아이패드 프로는 확실히 더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으로 동작한다. 터치 반응성도 조금이나마 더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화면 주사율이 높아지면서 애플펜슬의 터치 딜레이 역시 줄어들었는데, 기존에도 훌륭했던 애플펜슬의 응답시간이 20ms까지 줄어들었다. 필자는 아이패드 프로 12.9 1세대 리뷰 당시 다음 세대 아이패드 프로가 애플펜슬의 응답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화면 주사율을 두 배 늘릴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딜레이를 더 줄이는 건 가능한 것일까요? 사실 이미 최소 지연시간은 0ms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서 디스플레이 부분의 변화 없이 최적화, 성능 향상만으로 지연시간을 추가로 줄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의 주사율이 120Hz가 된다면 어떨까요? 2세대 아이패드의 성능 향상치는 보수적으로 CPU 20%, GPU 30%로 잡았습니다. 이 경우 기존의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시간 내에 터치 인식, 앱 처리, 코어 애니메이션, GPU 처리의 모든 단계가 완료되고 바로 프레임이 갱신됩니다. 이 경우 사용자가 느끼는 지연시간은 0~24ms 사이의 수치일 것이며 디스플레이 주사율이 2배로 증가했기에 사용자가 보기에 기존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드로잉이 이뤄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벌써부터 다음 세대 아이패드 프로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주사율을 올리는 것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면이 그만큼 자주 갱신된다는 것은 거기에 맞게 아이패드 프로가 화면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초당 60장의 그림을 그리던 하드웨어가 초당 120장이 그림을 그려내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성능을 요구할 뿐 아니라 소모하는 전력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 자체는 이미 지난 세대의 아이패드 프로 역시 매우 높았을 뿐 아니라 이번 세대의 A10X 칩에서 CPU 성능 30%, 그래픽 성능 40%에 달하는 향상을 보여 주사율을 올리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에서 전력소모는 항상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애플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10X 칩 내부에 화면 주사율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는 회로를 투입했다. 이 회로는 프로세서가 고성능 코어와 고효율 코어 사이를 작업 부하에 맞게 조절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동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아이패드 화면이 정적인 컨텐츠를 표시하고 있다면, 이 회로는 아이패드의 화면 주사율을 24Hz까지 떨어뜨려 전력을 아끼고, 전체 화면으로 영상 컨텐츠등을 재생하고 있을 때는 거기에 맞는 주사율로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애플펜슬이 동작할 때나 사용자의 터치가 입력됬을 때, 시스템은 주사율을 120Hz까지 끌어올려 자연스러운 화면을 보여주게 된다. 애플은 이런 유기적인 주사율 조절 시스템을 ProMotion이라고 부르고, 실제로 매우 매끄럽게 동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새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은 매우 강력하다. 새 아이패드 프로에 들어가는 A10X Fusion 칩은 아이폰의 A10 Fusion칩과 마찬가지로 고성능 코어와 고효율 코어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이폰의 칩과는 달리 고성능 코어와 고효율 코어 모두 세 개씩 투입되어 총 여섯 개의 코어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아이폰과 같이 고성능 코어와 고효율 코어는 동시에 동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발표회에서 CPU 성능이 30%, 그래픽 성능이 40% 향상되었다고 밝혔는데, A8X 당시의 전례를 따르면 애플이 말하는 성능 향상은 싱글코어 성능향상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메모리 성능 증가가 수반된다면 새 아이패드의 긱벤치 멀티코어 점수는 1만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새 아이패드 프로는 엄청난 품질의 디스플레이와 함께, 엄청난 성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실제로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이 예상만큼 나온다면, 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PC의 성능에 뒤지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모바일 PC에 대해서 성능 우위를 점하는 수준이다. 새 아이패드의 강력한 하드웨어가 iOS 11과 만나 컨텐츠 생산 시장에서 아이패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맥 라인업의 업데이트 : 맥북, 맥북프로, 아이맥
맥 라인업 역시 이번 WWDC에서 전반적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맥북, 맥북프로, 아이맥 모두 인텔의 최신 프로세서인 카비 레이크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특히 맥북의 경우 기존의 1세대 나비식 키보드에서 맥북프로부터 도입된 2세대 나비식 키보드로 이행했다. 좀 더 자세한 사양과 성능이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확인하시길. 사실 맥북과 맥북프로 라인업의 경우 사실 매년 이뤄지는 리프레시 그 이상의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맥의 경우 좀 더 큰 변화가 있었는데,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아이맥 업데이트에서는 당연히 성능 향상도 수반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디스플레이 업데이트가 있었다. 아이맥 디스플레이는 애플 기기들의 디스플레이 중 최초로 Display P3 광색역을 지원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업데이트된 아이맥의 디스플레이는 8비트가 아닌 10비트 컬러 채널의 색상을 나타낼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빛의 삼원색인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밝기를 다르게 하여 여러 색상을 나타내는데, 각각의 색상을 얼마나 세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를 지정하는 것이 컬러 채널이다. 기존 8비트 디스플레이는 서브픽셀 하나 당 256가지의 밝기 정도를 표현할 수 있어, 한 픽셀은 총 1677만가지의 색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10비트 컬러 채널을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는 서브픽셀 하나당 1024단계의 밝기 정도를 표현할 수 있고, 한 픽셀은 총 10억가지 색상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다만 일반적인 디스플레이 출력 신호는 컬러 채널이 8비트이므로, 나머지 2비트에는 랜덤한 값을 넣고 돌려 출력하게 되는데 이를 디더링 작업이라 부른다. 이런 디더링 작업을 거친 결과는 똑같은 디스플레이 입력을 받은 경우라도 미세한 색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이 덕분에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에서 흔히 발생하곤 하는 색 계단 현상 등을 방지해줄 수 있다. 이 외에도 아이맥 디스플레이는 지난 세대에 비해 43% 더 밝아진 디스플레이를 탑재했고, 대비율도 높은 디스플레이를 장착해서 주변광이 심한 환경에서도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맥북, 맥북프로, 아이맥 제품군은 최신 인텔 프로세서인 카비레이크 프로세서를 탑재하는 등의 리프레시를 받았다. 아이맥 제품군의 경우 지난 세대에서 4K 모델에 내장 그래픽만이 제공되었던 것과는 달리 맥북 프로 고급형과 CTO에 들어간 라데온 프로 455와 460이 탑재되어 그래픽 성능이 향상되었다. 5K 모델의 경우 라데온 프로 580 모델까지를 탑재할 수 있는데, 지난 세대의 최고 옵션인 M395X에 비해 1.5배 더 빠른 그래픽 성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맥에 새로 탑재된 디스플레이는 10비트 컬러 채널 디스플레이로 10억개 이상의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 HomePods과 아이맥 프로
오늘 행사에서는 실제 제품을 보기까지는 한참이 걸리는 제품들 역시 공개되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 행사에서 무엇보다 많은 주목을 받은 제품은 바로 실제 제품 출시까지 가장 많은 시간이 남은 HomePods과 아이맥 프로였다. 이들은 핸즈온 세션에서도 직접 만져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비싼 몸값을 가졌다.
먼저 아이맥 프로이다. 아이맥 프로의 자세한 사양이나 기술적인 부분은 이 글을 참조하고, 여기서는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 위주로 풀어내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 일화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난무하던 애플의 라인업을 모두 정리하고, 단 네 가지 제품에만 회사의 역량을 결집시켰다. 잡스가 그렸던 그래프에는 두 축이 있다. 한 축은 프로와 일반 사용자 축이며, 한 축은 모바일과 데스크톱 축이다. 즉, 당시 애플이 역량을 집중할 네 가지 제품은 일반 사용자용 데스크탑, 프로용 데스크탑, 일반 사용자용 노트북, 프로용 노트북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현재까지도 애플의 맥 라인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애플은 이번 행사에서 이런 불문율을 깨뜨렸다. 일반 사용자용 데스크탑에 해당하는 아이맥에 프로라는 접미사를 붙인 것이다. 실제로 아이맥 프로는 현재의 연탄 맥 프로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게다가 5K의 Display P3, 10비트 등의 기능으로 무장한 강력한 디스플레이 역시 포함하고 있다.
또, 특별한 제품이라는 것에 걸맞게 특별한 색상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몸체 색깔로 스페이스 그레이를 선택한 것이다. 다만 아이맥 프로의 스페이스 그레이는 아이폰의 밝은 스페이스 그레이보다는 훨씬 침착하고 어두운 색이다. 함께 공개된 숫자 키가 포함된 키보드를 포함해 매직 트랙패드와 매직 마우스 역시 이런 아이맥 프로에 깔맞춤한 검은색 외장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새 아이맥 프로에 들어갈 CPU와 GPU 모두 현재는 준비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아이맥을 만나려면 우리는 대략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새 아이맥은 안타깝게도 사용자가 메모리를 확장할 수 없다. 메모리 자체는 표준 ECC 메모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메모리에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의 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디스플레이를 뜯어내지 않고는 이를 직접 교체할 방법은 없다. 디스플레이를 뜯어내고 메모리를 교체할 수는 있겠지만, 이럴 경우 재조립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워런티가 날아가게 되니 이 비싼 제품에 선뜻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플은 아이맥 프로를 발표하면서 같은 사양의 워크스테이션을 부품 조립 방식으로 만들려면 7000달러가 든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새 아이맥 프로는 4999달러부터 시작한다. 정말 합리적인 가격인 듯 하면서도 비싼 새 아이맥 프로였다.
다음 제품은 애플의 Hi-Fi 제품, HomePods이다. 사실 이 제품은 루머로 들었을 때 반신반의 했던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키노트를 보고 나니 애플이 어떤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제품은 본질은 스마트홈의 허브로써의 역할이 아니라 Hi-Fi 스피커에 있다. 애플이 직접 디자인한 우퍼와 7개의 지향성 트위터가 포함된 이 제품은 방 어디에 놓이든, 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최적의 음향을 재생해 줄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고가의 Hi-Fi 스피커는 최적의 음향을 듣기 위해서는 배치 자체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런 작업 없이도 사용자가 최적의 음향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제품 자체의 디자인은 정말 무난하다. 정말 심플하면서 동시에 오묘한 디자인이라 무어라 말로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스피커의 재질이나 이런 것들을 좀 더 만지면서 디자인을 느껴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내게 허락된 것은 이 친구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것 뿐이었다.
HomePods의 가격은 349달러이다. 물론 HomePods가 어떤 소리를 내주냐에 달렸지만, Hi-Fi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운드를 내줄 수 있다면 이 가격은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만약 HomePods의 사운드가 기대 이상이라면, 이 제품은 에어팟처럼 육주팟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제품이다. HomePods의 출시 역시 12월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나마 12월에 출시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정도로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HomePods이 출시된다면 닥터몰라에서 공수해서 이 제품의 음향 성능을 뜯어드릴 것을 약속하겠다.
이렇듯 오늘 발표에서는 당장 우리 손에 닿지 않는 제품들도 발표되었다. 이들 제품의 출시일을 기다리면서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들을 살펴보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이 될 듯 하다.
총평 : 거대한 One more thing…
최근 애플의 행사에서는 이렇다할 One more thing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애플은 개발자들을 위한 WWDC에서 흥미로운 하드웨어 업데이트 소식을 곁들였다. 10.5인치 아이패드 프로는 종이같은 디스플레이를 제공하며, 기존의 아이패드와 비슷한 휴대성에 20% 넓어진 화면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들어간 A10X 칩의 성능 역시 발군일 것으로 보인다. 아이맥은 이제 기존보다 더 좋은 품질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출하되며, 맥북은 2세대 나비식 키보드를 장착했다. 대부분의 맥 제품군들이 카비레이크 프로세서를 장착했음은 물론이다.
당장 우리 손에 잡히지 않을 신제품 역시 두 개나 공개되었다. 역대 가장 강력한 아이맥인 아이맥 프로는 새로운 맥 프로가 출시되기까지 맥 제품군의 임시 플래그십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HomePods는 Hi-Fi 시장을 정복하겠다는 애플의 야심찬 선언이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 시장의 크기가 애플에 있어 매력적인 크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애플이 이 제품으로 정말 재미를 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Hi-Fi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둬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Hi-Fi에 큰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도, HomePods를 통해 이 시장으로 뛰어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애플의 가격 책정 역시 이런 면을 어느 정도 감안한 가격 책정으로 보인다. 애플이 Hi-Fi 시장을 넓히고, 거기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지가 이 제품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번 WWDC는 애플이 자신을 바라보는 전세계의 팬들에게 풀어놓은 거대한 선물 보따리였다. 원래 행사의 목적에 맞게 풍성한 소프트웨어로 행사를 채웠을 뿐 아니라 개발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에게도 여러 현란한 신제품을 던져주었다. 실로 간만에 거대한 One more thing을 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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